18 6월 2026

K-조선, 단순 건조를 넘어 ‘관리’로 판 키운다: 美 해군 MRO 수주부터 무인 정비 기술까지

최근 국내 조선업계의 행보를 짚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 눈에 띈다. 그동안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배를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던 기업들이 이제는 다 만들어진 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거다. 선박의 유지, 보수, 정비(MRO) 시장이 단순히 애프터서비스 차원을 넘어 새로운 핵심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체질 개선이다.

당장 HJ중공업이 최근 터뜨린 성과만 봐도 이 시장의 덩치와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HJ중공업은 지난 16일 미국 해군으로부터 함정정비협약(MSRA) 체결 대상자로 최종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MSRA는 미 해군이 직접 부여하는 까다로운 함정 정비 자격인데, 이 허들을 넘었다는 건 단순히 후방 지원함 수준을 넘어 미 해군의 핵심 전력인 전투함과 호위함 정비 사업에까지 직접 손을 뻗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당장 이달 23일부터 2031년 1월 초까지 꽤 넉넉한 유효기간도 챙겼다. 향후 5년간 연간 20조 원 규모로 굴러가는 미 해군 함정 MRO 시장의 한복판에 진입할 확실한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물리적인 수주전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예 정비 사업의 패러다임 자체를 기술적으로 뒤집어보려는 시도도 꽤나 공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을 필두로 한 HD현대 그룹 계열사들(HD한국조선해양, HD현대로보틱스, HD현대마린솔루션, 아비커스)과 도료 전문기업 KCC, 수중 로봇 기술을 가진 타스글로벌이 아예 작정하고 손을 잡은 ‘토탈 선체 케어 솔루션(Total Hull Care Solution)’ 공동 개발 건이 딱 그런 맥락이다.

사실 배 밑바닥에 따개비 같은 해양 생물이 달라붙는 ‘생물 파울링(Biofouling)’ 현상은 해운사들 입장에선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다. 이게 배의 마찰 저항을 높여 연비를 갉아먹는 데다, 갈수록 깐깐해지는 글로벌 환경 규제에도 직격탄을 날리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사람이 직접 눈으로 보고 주기적으로 배 밑창을 청소하는 원시적인 방식에 의존해왔는데, 솔직히 이래선 선박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도 어렵고 체계적인 데이터화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연합체는 아예 수중 로봇을 등판시켜 이 판을 완전히 자동화해 버리기로 했다. 선체 상태를 진단하는 것부터 시작해 실제 청소, 페인트(도막)가 벗겨진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훼손 검사, 그리고 청소가 얼마나 잘 됐는지 효과를 검증하는 것까지 전 과정을 로봇과 데이터 기반으로 한 번에 처리하는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자율주행 수중 로봇 기반의 상태 진단 기술은 물론이고, 도막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로봇 청소 표준과 방오도료 규격의 영점을 새로 맞출 계획이다. 여기에 선박의 운영 데이터와 연동된 연비 최적화 기술까지 얹혀진다. 특히 HD현대 진영은 그룹 내 로봇 제조 인프라를 십분 활용해 이 모든 프로세스를 수행할 수중 로봇 개발을 직접 진두지휘한다. 조선업과 페인트 화학, 그리고 로봇 기술이 하나의 정비 솔루션으로 묶인 건 업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단순히 배 밑창을 깨끗하게 닦아주겠다는 1차원적인 발상을 한참 넘어선 거다. 연료를 아끼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본원적 목적을 달성하는 동시에, 이들이 축적하게 될 막대한 데이터와 무인 자동화 기술은 결국 선박 수리 및 정비 시장에서 아무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게 될 게 뻔하다.

HJ중공업이 미 해군이라는 거대 인프라에 안착해 물리적인 MRO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있다면, HD현대 진영은 그 MRO 시장을 장기적으로 지배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생태계를 밑바닥부터 새로 짜고 있다. 한국 조선업이 배를 건조해 인도하고 끝내던 과거의 방식을 지나, 선박의 태동부터 폐선까지의 전체 생애주기에 끈질기게 관여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이런 입체적인 변화가 향후 글로벌 해양 주도권 경쟁에서 꽤 날카로운 무기가 될 거라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